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일드"악의"(스포주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우연히 접하게 되서 드라마를 한편씩 보고있다. 원작소설을 먼저 보는게 좋을텐데 요즘 시간이 없어서 소설은 좀 피하는편이다. 틈틈이 보기엔 드라마가 제격이다. 지금까지 본드라마는 '백야행','악의','히가시노게이고 미스테리즈'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테리즈는 정말 괜찮았다. 이정도 퀄리티의 미스테리물 단편드라마가 있었던가? 앞으로 나올건가?하면 좀 힘들것 같다. 이 작품이 워낙 인상적이여서 다른 히가시노 작품들을 찾다보니 '악의'를 보게 됐다.
우선 예전작품이라 연출이 촌스럽고 화질도 조잡하지만 지금까지본 히가시노 원작작품중에서는 가장 잘만들었다. 백야행과 비교해보면 백야행은 비이성적 감정을 지나치게 과잉으로 그것도 반복적으로 표현해내서 나중에는 공감하기 힘들지경까지 가버렸던 반면 악의는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필요한 정보만을 전달하면서도 인물들의 연기를 잘 표현해서 지루하지 않게 몰입할수 있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미스테리들과 다소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건의 파편들을 조합해서 범인을 찾아가는 형태가 아니라 이미 범인을 드러내놓고 그 사람의 범행의도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형태를 취한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작품의 이후 상황이 예측되는 일종의 '예측범위'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그대로 진행될경우에 시청자는 시시하다라고 느껴버린다. 이럴경우에는 이야기 외적으로 다른부분으로 그것을 대체시킬수 있어야한다.) 내가 생각한 악의의 예측범위는 주인공이 자신이 죽인 친구의 모든것을 빼앗고 싶은 욕망을 범죄로 달성하려했던것. 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좀 달랐다. 짝사랑하던 친구부인의 죽음으로 인한 망상이 하나의 계기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범행이유라기보다는 그동안 품어왔던 질투심, 패배감, 박탈감같은 감정이 분출될 하나의 통로에 가까웠다. 죽은 작가친구가 간단하게 한단어로 표현한것처럼 '악의'로 표현될수 있는 어리석은 인간의 감정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은 어쨌든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마무리가 되는데 이게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갖는 특징인것 같다. 살인과 그것에 관련된 온갖 자극적인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작품속 편집자가 주인공에게 충고하던 내용처럼)대중이 갖고 있을 상식과 윤리관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백야행에서도 그 애를 쓰지만 결국 둘다 불행지지고 만다. 이를테면 악행을 저지른자는 천벌을 받아야 한다는 대중적 윤리관에 순응한 것이다. 모든 메인스트림 작품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한데 히가시노게이고는 다소 그 밖으로 벗어날듯 하면서도 유유히 다시 그안으로 들어가 있기에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완전 죽여주는 큰재미라기보다는 부담없으면서 흥미로운 그런 작품인것 같다. 비교해보자면 김전일 같달까? (아마 김전일도 히가시노에 영향이 있을듯)물론 원작으로 보면 느낌이 완전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이 편한 재미에 빠져 지낼 계획이다.